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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대국 일본의 힘, 100년 이어온 '국내파들의 師事'
이남은
2018. 10. 20. 00:30
*노벨상 대국 일본의 힘, 100년 이어온 '국내파들의 師事'
노벨 과학상 올해까지 23명, 2000년대 들어 매년 1명꼴… 日 열도의 무시무시한 學脈
동양권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온 나라는 일본·중국·인도다. 이 중 맥을 잇는 곳은 일본뿐이다. 인도는 1930년 수상 후 후계자가 없다. 대만을 포함한 중국은 1957년 재미(在美) 과학자의 공동 수상 이래 2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일본은 1949년 첫 수상 이후 올해까지 23명째다. 20세기 후반기 업적을 바탕으로 2000년대 이후에만 18명이 받았다. 21세기 들어 압도적 1위인 미국의 다음 자리를 두고 영국과 경쟁하고 있다.
일본의 약진은 근본적으로 과학의 진보가 근대화와 함께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육 시설이 충분했고 후발 국가로선 비교적 많은 자본이 과학에 투입됐다. 하지만 사제(師弟) 관계와 국내 연구 거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맥(學脈)이 없었다면 패전과 장기 불황 속에서 동력을 잃었을 것이다. 일본과 연구 문화가 비슷한 한국이 참고할 만한 특징이다.
일본의 첫 수상자는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였다. 그는 국내파다. 모든 학위를 일본에서 받았다. 수상작인 '중간자' 논문을 발표한 1935년까지 유학도 안 했다. 국내에서 첨단 연구 논문을 읽었고 국내외 최고 학자에게 배웠다. 세계 수준의 연구 환경이 20세기 초 일본 국내에 조성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일본에서도 스승으로 섬기는 것을 '사사(師事)한다'고 한다. 유카와는 일본 근대 물리학의 계보에서 '야마카와→나가오카→니시나'를 계승한다. 야마카와 겐지로는 국가가 유학을 보냈다. 그의 임무는 미국의 물리학을 도쿄대에 이식하는 일이었다. 그가 귀국한 게 1875년이다. 야마카와는 제자 나가오카 한타로를, 나가오카는 제자 니시나 요시오를 유럽으로 보냈다. 이들은 유럽의 소립자 물리학과 자유로운 연구 풍토를 일본에 이식했다. 유카와가 성장했을 때 근대 물리학은 일본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유카와는 이런 풍토에서 성장해 노벨상을 받았다. 학맥으론 4대째, 1대의 귀국 후 74년째 되는 시기였다.
일본의 힘만으로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당시 일본 연구자의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해 지식을 나눠준 세계 물리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로버트 오펜하이머, 어니스트 로렌스.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수상은 1921년 그가 일본행 배를 타고 있을 때 발표됐다. 그는 과학 열풍을 일본에 선물했다. 이들이 일본을 도운 것은 초기 일본 유학생들이 보여준 학문적 호기심과 성실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이후(以後)
2008년 유학은커녕 해외여행도 한 적 없는 일본 학자가 노벨상을 받았다. 영어도 못했다. 물리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였다. 한국에서 화제를 모은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지방대인 나고야대를 나왔다는 점이었다. 나고야대는 지방에 있으나 명문 국립대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23명을 배출한 일본 11개 대학은 모두 국립대다. 도쿄 바깥 대학에서 17명이 나왔다. 교토대만 7명이다.
일본 국립대의 수준을 말해주지만 꼭 국립대라서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학맥이 국립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스카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8년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인은 3명이다. 2명이 나고야대 출신이다. 그들이 사사한 스승은 교토대 출신의 물리학자로 유카와의 직계 제자였다. 대학이 아니라 유카와의 학맥이 노벨상 수상자 2명을 더 배출했다. 이런 학맥이 일본 대학에 수많은 가지를 치고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조선일보 10월 12일 내용 일부)
소견)노벨과학상을 23명 배출한 일본의 학맥을 자세히 설명한 기사. 우리나라와 연구문화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이런 차이가 나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