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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차 여성이발사 이덕훈 "정주영, 김두한 머리에도 가위 대봤지"

이남은 2020. 3. 12. 00:34

"김두한이는 종각 이발원 있을 적에 이발하러 왔고, 정주영 씨는 남산 외인아파트 있을 적에 거기 이발하러 왔고… 하여튼 내가 중앙청 안 고관대작들 이발은 다 했지."
올해 여든여섯, 이발 경력 63년의 이발사 이덕훈 씨가 옛 손님들을 떠올렸다. 현대 그룹 창시자도 ‘장군의 아들’ 김두한도 이씨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60년대 웬만큼 유명한 사람 머리는 다 만져봤는데 까탈스럽게 구는 손님이 없었다"고 한다.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 가라고 했어." 배짱 두둑한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이발 면허를 정식으로 딴 첫 여성이다.

"머리 깎는 게 수학 문제 푸는 것 같애. 사람들 머리를 보면 어떻게 자를지 답이 나오지." 이씨의 실력은 여전히 현역이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선 이씨가 손님 머리를 다 깎은 뒤 의자를 젖혀 손님 얼굴의 잔털을 정리했다. 면도칼이 얼굴에서 춤을 추듯 빠르게 움직였다. "얼굴 베일까 떨리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씨가 이렇게 답했다. "맨날 하는 일인데 떨리긴 뭐가 떨리니.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이씨 이용원엔 이씨만큼 오래된 것들이 많다. 면도칼은 60년째, 미용 가위는 40년째 쓰고 있다. 철제 드라이어와 손님들 머리 감길 때 쓰는 물뿌리개도 요즘 비슷한 것을 보기 어렵다. 이씨가 말했다. "나도 오래됐는데 이렇게 멀쩡히 돌아가잖아. 물건이나 사람이나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 이용원 벽엔 빛바랜 이용사 자격증이 걸려있다. "지지배가 뭔 이발을 하냐." 이발사였던 아버지는 말렸지만 이씨는 아버지 따라 돈을 벌겠다며 열아홉에 보건사회부 구내 이발원으로 나갔다. 이발원 바닥을 쓸고, 잔심부름을 하다가 2년 후인 1958년 이용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여자가 이용사 자격증을 딴 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이씨의 유일한 벗은 손님이다. 경기도·충청도에 사는 손님들도 2-3시간 걸려 이씨를 찾아온다. 가게에 손님들이 붐빌수록 이씨는 활력을 찾는다. 머리 한번 깎는 가격은 9,000원, 이씨는 만원 지폐를 낸 단골에게 5,000원을 거슬러줬다. "왜 이렇게 안 남는 장사를 하냐"라는 질문에 이씨는 "단골손님 덕에 내가 먹고사는데 그들 돈 받아 뭐 하냐"고 답했다. "날 잊지 않고 나한테 소중한 머리를 맡겨주는 손님들한테 너무 감사하지. 아무도 날 찾는 사람이 없을 때, 그때 사람은 죽는 거야."
끝없는 내일까지 일하고 싶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 이덕훈씨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조선일보 3월9일자)

소견) 날 잊지 않고 나한테 소중한 머리를 맡겨주는 손님들한테 너무 감사하지. 아무도 날 찾는 사람이 없을 때, 그때 사람은 죽는 거야."끝없는 내일까지 일하고 싶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 이덕훈씨의 이야기,진짜 멋지십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부친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