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온수산업단지(온수산단)를 찾은 5월 14일 오후 1시 무렵. 공장 벽 너머로 날카로운 기계음이 귀청을 울린다. 불꽃이 튀는 가운데 작업복을 풀어헤친 인부가 대형 철제 파이프를 용접하고 있다. 다른 공장에서는 볼트 등 금속 부품들을 연마하는 공정이 한창이다. 윤활유 증기가 섞인 매캐한 쇳가루 사이로 숙련된 기술공의 손길이 부지런하다. 작업장에 자재를 하역한 9.5t 대형트럭이 온수산단을 서둘러 빠져나간다. 이곳 근로자들에게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런 어려운 얘기는 모른다”거나 “일감만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공기(工期)를 맞춰야 하는데 누가 시간 재면서 일하나”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작업을 마치고 문을 걸어 잠그는 공장이 하나 둘씩 눈에 띈다. 하루 일을 마감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퇴근하는 공장 직원들을 붙잡고 이유를 묻자 “요즘 일감이 없어 이르면 3시에 마감하기도 한다”면서 “본의 아니게 주52시간도 일을 못 하고 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온수산단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변 상권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근에서 2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신모 씨는 “보통 저녁시간에 30~40인분 식사를 준비했는데 요즘은 10인분 정도 판다. 매출도 20%가량 줄어서 직원을 내보내고 혼자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근처 호프집 사장인 이모 씨도 “16년째 장사하면서 최악의 수입을 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손님의 80% 이상이 온수산단 근로자인데 요새 일감이 감소하자 당장 술값부터 줄였다는 것. 

해가 지기도 전 한산해지는 온수산단 풍경을 보며 이곳에서 30년 이상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70대의 노사장도 할 말이 많다. 그는 “큰 규모의 생산라인을 갖춘 대기업과 달리 이곳 제조업체들은 일감이 몰리는 성수기에 숙련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하다”며 “수십 년째 온수산단에서 기업을 운영해온 입장에서 정부 정책이 현실성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이른 퇴근을 서두르는 온수산단 근로자들과 드문드문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인근 식당 주인들 사이로 저녁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병태 KAIST(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 교수는 “근로자 수 49명 이하인 영세사업장의 경우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시 필요한 추가 고용이나 설비 자동화에 대처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며 “저소득 근로자 또한 평일 잔업이나 휴일 근로로 부족한 임금을 보충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5월 19일 내용 일부)

소견)정부가 근로시간을 규제하되 근로자가 원하면 예외를 허용하는 영국의 ‘선택적 배제 제도’처럼 대책 마련을 통해 당연히 중소기업과 근로자의 피해를 줄여야 합니다.

by 이남은 2019. 5. 22. 00:15